소개
계룡산의 한 줄기인 고청봉 동쪽 사면 중턱에는 조선시대 불운한
천재였던 고청 서기가 잠들어 있다.
서기는 조선중기의 학자로 스무 살 되던 해에 보령에 있는 토정
이지함의 문하에 들어갔고, 이후 이중호의 문하에서도 3년간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제자백가는 물론 기술의
이론까지 통달하였다. 특히 불교의 선학을 좋아하였는데, 그러나
이지함을 만나면서 비로소 유학이 정도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계룡산 아래 공암에 터를 잡고 오로지 학문과 강학에만
전념하였으며 1581년에는 충청도 최초의 서원인 충현서원을
창건하였다.
서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달 전 고청봉 산기슭에 묻혔으며
묘소 입구에 자리한 신도비는 1914년에 건립한 것으로 인재공파
후손인 서주덕의 주도하에 만들었다.